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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2011 늦여름




천둥번개, 2001 여름 

안산에서 바라 본 서울, 2011



경성고 사거리에서 지나가는 마을 버스를 쳐다보았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림과 같은 복장의 여자 기사님이 핸들을 잡고 계셨기 때문이다. 

요즘은 심심찮게 여자 기사님들을 볼 수 있지만 대체로 숏커트에 짙은 선글라스를 끼거나 옷도남자 기사님들과 차이 없이 입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도로 위의 여성 운전자들은 쉽게 무시당하고 같은 실수를 해도 더 욕을 먹는 경우가 많다보니 고육지책으로 척 보기엔 성별구분이 쉽지 않도록 연출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아니면 본디 성향이 터프하고 남성적이어서 버스 운전을 하시는 분들은 자연스레 패션도 그런 쪽을 선호하실 확률이 높다. 


그런데 오늘 본 저 기사님의 복장은 정말이지 입이 떡 벌어지게 여성스러워서...난 드라마에서 말고는 저런 복장을 실제로 본 게 처음이다. 꽃받침처럼 목둘레를 감싸고 있는 레이스 카라하며, 어깨부터 가슴께에 펼쳐진 하얀...저걸 뭐라해야되지? 게다가 쇄골 가운데 위치한 호박같은 붉은 장식 포인트까지. 빨리 종점찍고 아들내미 상견례 자리라도 나가실 듯한 우아함을 갖추셨더랬다. 다음에 또 만나면 도촬이라도 해서 사진을 남기고 싶다. 




집 앞 골목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할머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우리 아들 우산 안 가져갔는데...중얼거리면서 서성이고 계셨다. 그 아들도 오십은 족히 돼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모르긴 몰라도 그 집엔 모자가 단둘이 살고 있는 듯 했다. 그 뒤에도 늦은 밤에 할머니가 골목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한번씩 호통이나 혼잣말에 놀라 할머니를 돌아보곤 했다. 귀가가 늦는 아들이 걱정스워 그러시는 거라 여겼다.

엊그제 저녁에 집을 나서는데 또 그 할머니를 뵜다. 막 성탄절이 지나서였을까 빨간 털모자에 스웨터도 빨간색. 작은 얼굴 위로 방울 달린 털모자가 푹 내려와 마치 모자가 무거워 뒷짐을 지고 허리가 조금 굽은 것처럼 보였다. 아장아장 걸으시는 할머니를 지나가는데 내 뒤에다 뭐라고 중얼거리셨다. 평소와 달리 나를 향해 말씀하시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지만 내 앞에 또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께서 이쪽을 향하고 계시길래 그 분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지나치려했다. 헌데 생각해보니 지금 할머니가 나오신 골목이 댁이 있는 골목보다 하나 아랫쪽의 골목인걸 깨닫고는 느낌이 쌔해서 할머니를 향해 돌아섰다. 할머니가 다시 말씀하신다.

우리집이 어디에요?

나는 질문의 의미가 한번에 캐치가 안 된 채로, 여전히 이 질문이 나를 향한 것인지가 의심스러워 중간에서 할머니와 아주머니 두 분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뒤늦게 상황을 깨닫게 됐다. 할머니께서는 길을 잃고 집을 찾아 헤매고 계셨던 것이다. 그것도 10m도 안되는 거리의 옆 골목에서.

아주머니는 조금 떨어져 계셨지만 이미 상황을 알고 계신지 저쪽이에요 할머니 라고 외치셨고 나는 이쪽 아닌데 라며 망설이는 할머니를 모시고 댁이 있는 골목 앞까지 모셔다 드렸다. 할머니는 골목 앞에 와서야 오른편의 금이 간 벽을 가리키며 아 여기 벽이 무너진데..여기가 맞네요. 미안해요. 시간 낭비하게 만들어서. 하시며 고마워하시고 미안해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아장아장 느린 걸음으로 대문까지 들어가시는 동안 그 뒷모습을 다 봐드릴 자신이 없어서 원래 가려던 길을 서둘러 갔고 그 때까지 길에 서서 나와 할머니를 지켜보던 동네 아주머니는 열쇠로 자기 집 대문을 따면서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서 집을 잘 못찾아

나는 걸음만 조금 늦추며 예에 했고, 아주머니는 대문을 닫고 들어가셨다. 
 

머니볼, 베넷 밀러, 2011


이 정도 영화를 두고 '그저 그런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할리우드를 너무 과소평가 하는 게 아닐까. 이야기가 완결되지 못한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탓이다. 완전히 재구성하기에는 실제 사건이 너무 최근의 일이라는 점과 너무 많은 목격자가 있다는 점들이 분명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차라리 모티브만 따오고 완전히 새롭게 이야기를 쓰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딸의 에피소드가 전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해 작위적으로 보였고 눈물 가득한 브래드 피트의 눈동자 클로즈업 엔딩은 최악이었다. 거짓, 억지, 강요...이런 느낌을 주는 엔딩이다. 
소크라테스는 미를 '유용성'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겐 화려한 황금 방패보다 튼튼한 강철 방패 쪽이 더 아름다웠다.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대인은 미와 선을 아예 하나로 합쳐 이상으로 삼았다. 그게 바로 '칼로카가티아(善美)'다. 한편 근대인들은 미를 '인식'이라고 생각했다. 다 빈치에게 예술은 과학이었고, 바움가르텐에게는 감성적 인식이었다. 하지만 칸트가 보기에 이건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왜?

p.253, 미학오디세이1, 진중권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관능적인 육체에 주목하면서도 결코 퇴폐적이지 않다. 부패하기 쉬운 재료로 요리하면서도 늘 신선한 결과물을 식탁에 올리는 요리사처럼 노련하다. 


2010년 9월 12일 마창대교 위에 있는 8대의 CCTV 중 하나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녹화됐다. 승용차를 타고 온 한 남자가 자신의 어린 아들과 다리 난간에 잠시 서 있다가 아들을 먼저 밀고는 곧이어 자신도 뛰어내렸다. 마창대교의 높이는 64m 다. 


1년전 기사를 볼 당시에는 "열한 살 난 아들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난간을 넘었다" 는 문장을 본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검색하면서 찾은 기사들에는 저 내용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서 멋대로 만들어낸 문장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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