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블로그의 시대라고 여겨지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주변에 친구들도 네이버에 이글루에 티스토리에 블로그 하나씩은 있었고 덕분에 친구들의 속마음이랄까 글을 보며 이 친구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이런 데 관심이 있구나 하며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드물긴했지만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글 때문에 블로그 스킨 때문에 말을 걸어줬던 사람들. 나도 무언가 통한다고 느껴서 글을 남기고 내 블로그 주소를 걸어놓고 오기도 했다. 그 모든 시간들이 이제는 어릴 때 뛰어놀던 골목길처럼 아련해졌다. 잠깐 눈감았던 뜬 것 같은데 4년, 5년이 훌쩍 가버렸다. 그때의 주소를 주소창에 넣어보지만 찾을 수 없는 페이지거나 주인도 찾지 않는 폐가가 되어 있다거나 한다. 그립다. 


나의 블로그도 오랫동안 폐가였다. 문까지 열어 놓으면 더 쓸쓸한 기분일까봐 문을 꼭 닫아놓고 '끝'이라고 팻말을 달았다. 그 '끝'이란 말이 오늘 보니 더 쓸쓸했던 것 같다. 사실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함부로 쓸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누군가 나처럼 블로그 시대의 친구를 찾아서 이 블로그를 찾아왔을 때 다음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다. 더는 아무도 살지 않는 울창한 숲에 들어와 오랜 시간 아무도 걷지 않았을 긴 오솔길을 혼자 걸어왔을 때 놀랍게도 먼 굴뚝에서 연기가 솓아오르고 장작 패는 소리를 따라와보면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오두막을 발견하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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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의 인생이 갑자기 곤두박질친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래리에게 싸우스 코리아 학생이 성적을 고쳐달라며 돈봉투를 놓고 간다. 옆집의 터프가이는 무턱대고 마당경계를 넘어서 보트창고를 짓겠다고 한다. 아내는 래리의 친구 싸이와 결혼하겠다며 이혼을 독촉한다. 대학의 종신 재직권 심사가 코앞인데 심사위에 래리를 험담하는 익명의 편지가 투고된다. 유대교 성인식을 앞둔 아들은 마리화나를 사기 위해 누나의 돈을 훔치지만 누나 역시 래리의 지갑에서 슬쩍한 돈이다. 모든 것이 평온하게만 여겨지던 래리에게 이 모든 일들이 갑자기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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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영화에 어울릴 법한 아이디어에서 잉태된 영화다. 허무하다는 평들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공간도 얼마되지 않고 외계인 표현도 매우 절제돼 있다. 게다가 배우도 많이 안 나오고 그런 상황에서 꽤 비중있는 단역으로 감독 자신이 나온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가벼운 마음으로 만든 저예산 소품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IMDB 를 뒤져보니 추정예산이  $72,000,000 (estimated) 이나 된다 !! 다음 작품이었던 빌리지(2004)는 $60,000,000 (estimated), 전작이었던 언브레이커블(2000) $75,000,000 (estimated), 식스센스(1999)는 $40,000,000 (estimated) 였다. 2000년대 초반 헐리우드 평균 제작비가 7000만달러 정도라니 딱 평균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다. 그 돈 다 어디에 쓴 거지?

그렇다고 영화가 막 구리지는 않다. 로우앵글로 화면 가까이(속칭: 대마이)의 무언가를 향해 시선을 주거나 조심스레 다가오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방식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미지의 대상을 향한 궁금증과 긴장감을 자아내는 방식도 멋지진 않지만 충분히 납득가능하다. 딸 아이의 오염된 물에 대한 강박도 자연스럽게 영화 전체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녹여낸 것도 칭찬하고 싶다. 하지만 죽기 직전 아내의 의미를 알 수 없는 헛소리가 훗날 닥칠 위기의 상황을 타개할 신탁처럼 작용한다는 이야기는 확실히 관객을 허무한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게다가 그게 '야구빠따를 휘둘러라'라니!

리뷰를 쓰다보니 보고 난 직후보다 더 별로인 영화라는 감상이 진해진다. 확실히 영화에 어울리는 이야기 더 적합한 이야기라는 게 존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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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데도 우산을 쓰고 산책을 나갔다. 흐린 날씨 탓에 햇빛은 없지만 그래도 밝은 시간에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여기저기 떨어지는 빗소리와 간간히 들려오는 바람소리를 듣는게 제일 좋지만 습기에 젖어 은은하게 풍겨 올라오는 풀냄새와 물에 젖어 한층 선명해진 갖가지 사물들의 색깔을 감상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빗물에 퉁퉁 불어버린 양말은 집에 들어와서 후딱 벗어버리면 그만이다.


홍제천 가의 산책로 중에서 연남교에서 한강방향으로 약 1km정도는 도로가 처마처럼 튀어나와 산책로의 지붕역할을 해준다. 그래서 비오는 날에도 우산없이 걸을 수 있다. 그 길을 내 걸음걸이에 집중해서 천천히 걷는다. 뒤꿈치부터 지면에 착지시켜 발바닥 전체로 걷기. 자꾸 바깥쪽으로 돌아가는 오른발을 왼발과 같은 각으로 유지하면서 걷기. 척추와 고관절이 뒤틀렸기 때문에 교정차원에서 이렇게 한다. 


한참 걷고 있는데 뒤쪽에서 바구니 달린 자전거가 스윽 추월한다. 중년 아주머니였는데 바구니에는 까만 비닐봉지를 바람막이처럼 둘러쓴 강아지 한마리를 태우고 있었다. 갈색털이 곱슬곱슬 했는데 종자는 모르겠다. 아주 얌전했다. 우리 나니도 다른 사람 눈에 저렇게 얌전해 보일 때가 있을까. 비만 오지 않았어도 나니를 산책 시켰을 텐데 하면서 계속 앞으로 걸었다. 홍제천의 수위는 꽤 높아져서 어떤 지점에서는 산책로 높이에 육박하게 올라와 있었고 내부순환로 고가도로의 배수관에서 새어나오는 폭포수같은 물줄기가 이상한 무늬를 만들며 홍제천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붕이 있는 산책로의 끝지점에 다다랐을때 물가에 걸터앉은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옆에 바구니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고 아까 바람막이처럼 쓰고 있던 까만 비닐을 돗자리처럼 깔고 앉은 갈색 털 강아지가 바짝 붙어 있었다. 아주머니는 흔히 군모라고 부르는 챙이 짧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통장을 펼쳐들고 그 안을 지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통장의 숫자들은 알아볼 수 없었다. 몇 걸음 후에 다시 돌아봤을 때는 통장을 접고 강아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이 장면이 이상하게 마음 속을 파고 들어왔다. 그녀의 행동에서 유추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슬픔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 통장에 찍혀있던 숫자들이 출금 아닌 입금된 내역이기를, 곱슬머리 강아지가 그녀 곁에서 오래오래 좋은 친구가 되기를 기도한다. 부엌 창 너머의 빗소리가 점점 더 거세지기만 한다. 빨리 비가 그쳐야 빨래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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