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전염병처럼 세상 모든 사람의 눈이 먼다는 것은 판타지 혹은 SF적인 설정이다. 그러나 거개의 판타지나 SF작품들이 실은 '바로 이 순간'의 현실 위에 오롯이 서 있듯이 이 작품 역시 동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은 끔직한 동화이며 인간과 문명에 대한 작가의 사고실험 보고서가 된다.

작품은 크게 세 파트로 나눌 수 있다.
1. 눈이 멀기 시작하는 최초의 사람들
2. 정신병동에 격리수용되는 눈먼자들
3. 아수라장이 돼버린 도시에서 살아남는 눈먼자들

가장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2번 파트인데 <파리대왕>이나 <15소년표류기> 같은 표류문학(?)의 뼈대를 잇고 있는 듯 하다. 감금된 눈먼자들의 외부에는 이들을 철저히 통제하는 동시에 그들을 '백색공포(눈이 머는 것)' 자체로 여기며 두려워하는 군인들이 있고, 내부에는 눈먼자들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과 권력다툼이 발생하고 이를 통해 작가는 약탈과 폭력으로 얼룩진 인간 군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 눈먼자들의 수용소 이야기를 읽으며 계속 떠오르는 글이 있었으니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 소개된 '역학관계'란 글이다.

쥐들을 상대로 하나의 실험이 행해졌다. 낭시대학 행동 생물학 연구소의 디디에 드조르라는 연구자가 쥐들의 수영능력을 할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그는 쥐 여섯마리를 한 우리 한에 넣었다. 그 우리의 문은 하나뿐인데, 수영장으로 통하게 되어 있어서 쥐들은 그 수영장을 건너야만 먹이를 나누어 주는 사료통에 도달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 실험에서 가장 먼저 확인된 것은, 먹이를 구하러 가기 위해 여섯마리의 쥐가 다 헤엄을 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쥐들 사이에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즉, 헤엄을 치고 먹이를 빼앗기는 쥐가 두 마리, 헤엄을 치지않고 먹이를 빼앗는 쥐가 두 마리, 헤엄을 치고 먹이를 빼앗기거나 빼앗지 않는 독립적인 쥐가 한 마리, 헤엄도 못 치고 먹이도 빼앗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쥐가 한 마리였다. 먹이를 빼앗기는 두 쥐는 물속으로 헤엄을 쳐서 먹이를 구하러 갔다. 그 쥐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자, 먹이를 빼앗는 두 쥐가 그 쥐들을 때리고 머리를 물 속에 쳐박았다. 결국 애써 먹이를 가져온 두 쥐는 자기들의 먹이를 내놓고 말았다. 두 착취자가 배불리 먹고 난 다음 굴복한 두 피착취자는 비로소 자기들의 크로켓을 먹을 수 있었다. 착취자들은 헤엄을 치는 일이 없었다. 그쥐들은 헤엄치는 쥐들을 때려서 먹이를 빼앗기만 하면되었다. 독립적인 쥐는 아주 힘이 세기 때문에 착취자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천덕꾸러기 쥐는 헤엄을 칠줄도 모르고, 헤엄치는 쥐들에게 겁을 줄 수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쥐들이 싸울때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먹었다.

이번에는 스무개의 우리를 만들어 똑같은 실험을 했다. 스무개의 우리에서 역시 똑같은 구조,
즉 피착취자 두 마리,착취자 두 마리,독립적인 쥐 한마리,천덕꾸러기 쥐 한마리가 나타났다. 그러한 위계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을 좀더 정확히 알기 위해, 이번에는 착취자 여섯마리를 함께 우리에 넣어 보았다. 그 쥐들은 밤새 싸웠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 쥐들 가운데 두마리가 식사당번이 되었고,한마리는 혼자 헤엄을 쳤으며,나머지 한마리는 어쩔수 없이 모든것을 참아내고 있었다. 착취자들에게 굴복했던 쥐들을 가지고도 똑같은 실험을 해보았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그 쥐들 가운데 두 마리가 왕초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실험에서 우리가 정작 음미해 보아야 할 대목은,
쥐들의 뇌를 연구하기 위해서 두개골을 열어 보았을 때,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쥐는 바로 착취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착취자들은 피착취자들이 복종하지 않게 될까봐 전전긍긍했음에 틀림없다...
 
쥐같은 인간들.

상상의 힘은 꼭 섬세함과 함께여야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눈먼자들의 도시를 괴롭히는 가장 큰 요소중의 하나가 배설물이다. 똥과 오줌이 젖과 꿀처럼 흐르는 에덴의 도시. 그 도시에 사는 인간들은 왜 갑자기 눈이 멀었을까. 두려움? 내가 읽기로는 어떤 두려움 때문이었다. 병실에 모여 사람들이 자기 처음 눈이 멀었을 때 마지막으로 본 것을 이야기하는 게임을 한다. 그 말미에 두려움이 실명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 색안경을 쓴 여자의 말에 누군가 "그거야말로 진리로군, 그것보다 참된 말은 있을 수 없어, 우리는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어 있었소,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이 멀어 있을 것이고." 라고 덧붙인다.

아마 이 두려움은 풍요로우나 자유롭지 못한 우리들의 상태를 설명하는 감정일 것이다. 평생을 필요없는 필요를 추구하기 위해 노새처럼 일하고 맹목적인 경쟁에 파묻혀서 어깨를 걸고 나아가야 할 동료들의 뒤통수를 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안에는 바로 이 두려움이 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 망상적 두려움을 계속 유지시키려는 시스템. 아마 작가는 <눈먼자들의 도시>를 통해 이 진실을 덮고 있는 두꺼운 백색 장막을 벗겨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두 문장.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눈길을 얼른 아래로 돌렸다.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