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좋아하는 데 못 만난다. 무인도에서 4년을 표류한 이 남자는 오직 이 여자만 생각하면서 살아남았고 엉성한 뗏목에 몸을 싣고 목숨을 건 귀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사랑이 이루어지는 데는 그것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뭘 걸었는지는 결과에 별 영향을 안 끼친다. 현재의 삶을 모조리 무너뜨려야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라면 더욱 그렇다. 12년전에 봤을 때는 윌슨 말고는 아무 감흥도 없었는데 지금은 저 짜증나는 상황이 특히 부각돼보였다. 여전히 좋은 영화란 생각은 안 든다. 서로가 좋아하는데 그 감정을 죽이는 일은 하나의 생명체를 살해하는 것 마냥 잔인하고 끔직하게 여겨진다. 그렇게 뜨거운 피가 불끈거리는 생명력 넘치는 감정을 어떻게 죽이는가. 그걸 죽이고 자기도 죽는 건가. 당연히 삶은 계속 되겠지만 그 순간의 자기는 거기다 죽이고 가는 것 같다. 내 시체가 쌓이고 쌓이면 그게 추억이 되는 건가. 난 그냥 활활 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