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영화보는 경지에 올라 훌륭한 거 보면 감탄하고 구린 거 보면 구린내에 덜덜 거릴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멀었나보다. 여기저기서 히치콕의 마스터피스라고 일컫는 영화를 봤는데도 무덤덤하니...그냥 관객으로 남을 것이라면 지금의 내 취향에 만족하며 살아도 상관없겠지만, 영화를 그 이상의 것으로 취하고 싶다면 취향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감탄과 비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식견을 갖추어야 할 터.

음...줄거리 살펴보자. 스포일러 왕창이니 여기 부터는

재미있는 점은 제임스 스튜어트가 연기한 주인공의 캐릭터 변화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전혀 다른데 그 경계는 여자(진짜 친구 부인)의 죽음이다. 후반의 주인공은 약간 광기어린 모습으로 사별한 연인의 모습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남자가 된다. 전반부의 프로페셔널하면서도 따뜻한 모습과는 상반되는 캐릭터. 킴 노박이 연기한 여자 캐릭터 역시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전반부에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연기하고 있는 것을 관객이 모르기때문에 완벽히 '친구의 아내'이지만 후반부에는 시작하자마자 사건의 진상을 관객에게 고백하고 본래의 자신을 보여준다. 남자의 데이트 신청을 망설임 끝에 거절하지 못하는 부분은 관객으로 하여금 후반부로 오면서 삐뚤어져 도무지 정붙이기 힘들어진 남자에게서 떠나 그녀에게로 감정이입을 하는데 효과적으로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자의 무리한 요구들을 거절하지 못하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은 과연 저런 여자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여자들은 보통 저런 태도 매우 싫어한다고 믿는데, 영화 속 특수한 상황적 맥락을 억지로 상기하며 그 의구심을 애써 눌러야 했다.

주인공의 고소공포증을 표현하는 '트랙킹 앤 줌' 장면도 인상적인데 대학 때 동아리에서 이거 히치콕이 처음 한거라며 카메라 들고 깝치던 채모군이 떠올랐다. 요거였군 그래 ㅋㅋㅋ

타이틀의 소용돌이 이미지, 여자 주인공의 소용돌이 머리모양, 현기증이라는 제목 등 컨셉에 맞춰 여러 요소가 통일된 느낌이 좋았고, 중간의 애니메이션/실험영화 같은 장면은 뜬금없긴 했지만 킬킬거리며 웃을 수 있었다. 또 팬하면서 배경 바뀌는 거랑, 후면영사, 운전자 시점샷 등 저거 어떻게 했을까 궁금한 장면도 몇 개 있었다.

하지만 아직 내 부족한 식견 탓인지 탐정소설류에 대해 깊은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취향 탓인지 소문만큼 감탄스럽진 않았다. 뭐, 나중에 또 보면 다르겠지. 그때까지 열심히 볼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