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에 만들어진 장 삐에르 멜빌의 장편 데뷔작이다. 멜빌 영화는 석준이가 워낙 좋아하고 이송감독님이 추천해줘서 처음 보게 되었다. 보통 느와르라 불리는 영화들의 원조라 알고 있는데, 그에 걸맞게 주인공들은 주로 갱이거나 형사, 킬러 등이다. 당연히 자동차 추격씬, 총격씬도 빠지지 않는다. 아, 알랑 드롱도 자주 나온다.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본 영화들을 토대로 멜빌을 평하자면 '숨통을 조여오는 침묵의 대가'라고 부르고 싶다. 현대(?)적인 영화들이 빠른 화면과 스펙터클한 액션으로 스릴을 주조하는데 반해 멜빌 영화의 긴장된 순간은 늘 진공 상태처럼 건조하다. 불쾌하게 건조한 공기 속에서는 방아쇠에 올려진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이나 두 눈빛의 충돌로 붙을 지 모르는 작은 불꽃 만으로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 데뷔작은 느와르가 아니다. 갱도 없고 알랑 드롱도 없다. 독일군 장교(howard vernon)는 자기가 묵고 있는 집의 노인과 조카딸에게 늘 말을 붙인다. 프랑스의 위대한 정신을 찬양하고 이 전쟁이 프랑스와 독일의 위대한 두 문화가 화합하고 대승하기 위한 고통의 과정이라는 점을 피력한다. 하지만 두 프랑스인들은 침묵으로 점령자에게 맞선다. 장교는 이들의 저항에 경외감마저 느끼지만 동료 장교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이들에게 내뱉은 말들이 얼마나 공허하고 허황된 것임을 깨닫고 최전선을 향해 떠나버린다.  

영화의 주요 배경은 세 사람이 대화하는, 정확히는 장교가 말하고 노인과 조카딸은 침묵하는 벽난로가 있는 거실이다. 로우 앵글이 엄청나게 많이 쓰이면서 그로테스크한 howard vernon의 얼굴을 더욱 강조하는데 이 사람 생긴게 볼 때마다 기괴한 느낌을 주면서 자꾸 눈이 가게 만든다. 가끔 프랑스 배우들은 이런 류가 있는 것 같다. 
   

멜빌식 침묵이 제목에도 나오고 영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데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가 그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유성영화 시대가 도래해 영화에 소리가 입혀지면서 발명된 것이 바로 '침묵'이라 했던가. 멜빌의 영화들은 이 침묵과 절제된 동작으로 가장 농밀한 긴장감을 전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