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리버 피닉스)는 두 살때부터 도망자였다. 그의 부모인 아서와 애니가 FBI 수배범으로 15년간 도망자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격 반전운동원으로 네이팜탄 연구소를 폭파한 혐의로 쫓기고 있다. 당시 폭발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연구소 경비원이 눈이 멀었다고 한다. 대니와 어린 동생 해리는 이런 부모 탓에 6개월마다 학교를 옮기고 머리 색을 바꾼다. 친구를 사귈 틈은 커녕 언제 집을 떠날 지도 알 수 없는 5분 대기조의 삶을 산다. 하지만 대니는 부모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고난은 가족을 똘똘 뭉치게 하고 정상(?)적인 가족 보다 훨씬 더 그들의 생활에 가족애와 활력을 넘치게 한다.

하지만 문제가 없을 수 없다. 아서는 어머니가 죽은 뒤 한달 후에야 그녀의 부고를 듣는다. 그것도 차를 바꿔주러온 조직원을 통해서 말이다. 대니는 학교를 옮기면서 지난 학교의 성적표를 제출하지 못한다. 애니는 학교 직원 앞에서 아들의 성적표를 잃어버렸다고 너스레를 떨어야 한다. 애니와 평범한 관계 이상의 분위기를 풍기는 옛 조직원은 은행을 털자며 아서와 애니를 찾아온다. 아서는 그가 가져온 총더미를 아이들에게 들이밀며 절대 총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그날 밤 그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자신의 신상정보를 고래고래 떠벌리며 집에 들어온다.

대니는 애니의 재능을 물려받아 음악에 소질이 있다. 새로 전학간 학교의 음악 선생님은 그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줄리아드 음대에 추천서를 써준다. 대니도 열정적이어서 도망자 생활을 하면서도 늘 모형 건반을 들고 다니며 연습을 한다. 줄리아드 음대에 실기 시험을 보고 사실상 합격을 통보받는다. 하지만 그가 대학에 가려면 아서와 애니, 해리와는 영영 볼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이 영화의 주된 갈등이 발생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오른 소설이 있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가 그것인데, 이유는 인물 설정이나 주요 에피소드들이 너무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20년은 먼저 나왔으니 아마 오쿠다 히데오가 소설을 쓰며 이 영화를 참고 했음에 틀림없다. 너무 재미있게 본 소설인데 집에 가서 책을 다시 뒤져봐야겠다. 이 영화에 대한 언급이 없다면 좀 실망할 정도 유사한 부분이 많다. <남쪽..>에서는 아버지가 전공투 출신의 아나키스트로 나오고 어머니 역시 운동권의 마돈나 쯤으로 나왔던 것 같다. 물론 소설 속 가족이 일상적으로 도망을 다니거나 하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부모가 권세가 집안이라던가 (<허공..>에서도 애니의 부모도 부르주아 재력가로 나온다), 옛 조직후배가 찾아와 일을 저지르고 이들에게 약간의 피해를 입히는 점, 또 주인공 소년이 부모 몰래 외할머니를 만난다는 설정은 영화와 소설이 공유하는 부분이다.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애니의 생일파티에 대니가 로나를 초대해 즐겁게 케익을 자르고 음악에 맟춰 춤을 추는 장면이다. 요새 시드니 루멧의 영화들을 쭉 찾아보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느끼는 바가 이야기가 재미있고 배우들이 너무나 돋보인다라는 점이다. 이 생일파티 장면에서도 공식적으로 정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집안이지만 또 그래서 치뤄야하는 개인적인 문제들이 산재해있지만 그럼에도 이 '사람들'은 이 순간 얼마나 행복한지 느낄 수 있었다. 또 정반대의 환경에서 자라온 로나라는 소녀와 대니의 풋풋한 사랑은 이 가족의 짧지만 진한 행복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여배우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 영화 내내 불만스러웠는데 이 장면에서 만큼은 여배우가 참 이뻐보였다. 

이상적인 공동체를 가족이라는 틀에서 보여줌으로서 그 한계와 희망을 동시에 제시하는 소설로서 <남쪽으로 튀어>를 참 좋아했는데 그 원조격인 영화를 만난 듯 해서 반가웠다. 이송 감독님 홈페이지에 보니 시드니 루멧을 '민주당스럽다'는 말로 표현해 놓은 걸 봤는데 난 민주당스러운게 뭔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내가 본 바에 의하면 그는 최소한 '정의로운 시스템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일면 보수적으로 보이는 면도 없지 않다. 물론 그의 영화가 형식적인 면에서 유난히 극영화적이고 내러티브가 강하기 때문에 영화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래디컬하게 고민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 이 점이 그를 보수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 일조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이런 영화들에 환멸을 느껴 실험영화나 전위적인 영화에 천착할 만큼 난 장르영화, 극영화들들을 많이 보지 않았고 여전히 깊은 매력을 느낀다. 시드니 루멧은 숭고하진 않지만 농밀한 희노애락을 느끼게 해준다.   


덧. 
아이다호 이후 리버 피닉스의 두 번째 영환데 진짜 멋있다.
이제 곧 서른인데 저런 표정으로 사춘기 다시 보내고 싶다ㅆㅂ
근데 호아킨 피닉스는 정말 친동생 맞는감? 뭐가 달라도 너무 달라.
  
*잘 생긴 형을 둔 연기파 배우 호아킨 피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