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부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들의 노트'다. 벌써 냄새가 나지 않는가. 천재가 되고 싶은자 혹은 그들 천재성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알고자 하는자 이 책을 사라!

하지만 난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아직 학생 신분인 동생을 이용했다. 유용한 놈 크하하. 결론부터 말하자면 빌려 읽기 참 잘했다. 전체적인 구성이 산만하고 내용도 책의 제목과 부제를 통해 떡밥을 던져놓은 것만큼 매력적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후에 난 저자가 권한대로 나의 노트를 만들어 꾸준히 그것을 채워나가기로 결심했다. 왜냐면 사실 책을 읽기 전부터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었고 그 일환으로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수첩도 이미 데리고 있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혹했던 것이리라. 결국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얻고자 한 것은 그 노트의 운용 방법과 천재들의 구체적인 사례들이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의 시대에 노트는 구시대적이다. 하지만 노트의 유용함은 그 구시대적 특징에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오히려 편리한 정보수집 틀은 함정이 된다. 오늘날 인터넷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정보취합의 도구로 이용하는 블로그와 비교하여 노트 쓰기의 유용함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선물해 준다. 

몰두, 용이한 접근성, 직접적인 느낌.

사실 블로그에 뭘 정리하려다가는 삼천포로 빠지기 쉽다. 이메일 확인,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포털 찌라시 등등의 멀티 태스킹의 유혹이 도처에 널려있다. 하지만 노트는 지금 쓰고 있는 그것에만 몰두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요즘 누구나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고 하지만 노트북은 '전원 스위치를 켜고 운영체제가 부팅되기를 기다리고 파일을 열어 코멘트를 해야'하는 번거러움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노트는 갑자기 떠오른 중요한 생각을 곧장 기록할 수 있다.

또 자료를 붙여서 뚱뚱해지고 손글씨로 가득찬 때묻은 노트는 그 자체로 생각이 자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사실 시나리오 강의나 일러스트레이션 강의를 모두 들어본 나로서는 이 노트 쓰기가 낯설지 않다. '저널'이라고 불렸던 아이디어 노트 작성의 필요성을 두 수업 모두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무릇 작가라하면 장르에 상관없이 자신의 노트에 평소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해두고 그것을 취합하여 작품을 구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얘기다. 

이 영감어린 노트쓰기는 애완동물을 기르거나 작은 화분을 가꾸는 것과 비슷하다. 아니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양육'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노트라는 물질에 내 '영감과 생각'이라는 양분을 줌으로서 그것이 하나의 유기체로 진화되는 과정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트는 주제별로 하나씩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일단 잡다한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기록한 뒤 그것을 정리해서 다시 기록하거나 아니면 프린트해서 노트에 다시 붙이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렇게 구성된 노트의 물질성은 노트가 없었더라면 금방 흩날려버렸을 생각의 끈을 쉽게 놓치지 않게 해 줄 것이다.
 
이 책의 떡밥이었던 천재들의 노트는 그닥 특별하거나 실제로 내가 노트를 작성하는 데 유용한 팁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운용방식이 있으니 너도 니가 알아서 만들라는 교훈을 줄 뿐이다. 게다가 마지막 챕터에서는 엉뚱하게 '다중 지능' 이야기를 주제로 썰을 푼다. 아마도 천재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려는 시도였다고 보인다. 하지만 이런 산만한 구성은  '노트쓰기'와 '천재'라는 커다란 두 주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분량을 채우려고 억지로 껴맞춘 챕터라는 인상까지 받았다. 

마지막에 악평을 했지만 사실 하루만에 재미있게 읽었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빌려서'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끝으로 책에서 다룬 천재들 목록을 옮긴다.

아이작 뉴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이클 패러데이,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세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정약용, 엔리코 페르미, 벤자민 프랭클린, 임마뉴엘 칸트, 앙리 포앙카레, 헤겔.

중간에 파인만과 도스토예프스키도 잠깐씩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