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사코는 저널리스트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고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하는...
보통의 저널리스트들은 카메라나 펜을 든다. 물론 사코도 카메라와 펜을 들기는 든다. 하지만 저널의 최종 결과물이 사진이나 기사인 보통의 저널리스트들과는 다르게 사코는 만화를 통해 자신의 취재 결과를 대중들에게 선보인다.
결과는 대성공. 사코는 『팔레스타인』으로 1996년 미국도서출판 대상과 후에 보스니아 내전을 소재로 한 『안전지대: 고라즈드Safe Area:Gorazde』로 2001년 만화 부문 아이스너 상을 수상했다. 사코는 만화라는 매체로 저널리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사코가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최대한 정확히 알려고 현지인들을 취재하는 목적의 여행을 주요 뼈대로 한다. 사코는 그 와중에 직접 소요사건을 겪기도 하고 취재를 위해 이스라엘에서 금하는 일들을 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제법 가까이서 보고 듣고 느낀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으로서의 자신과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 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취재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이 늘 겪는 참상을 곧이곧대로 전할 수 없으며, 사코 자신은 그들의 고통을 온전히 공감할 수도 없다. 또 이 취재가 어떤 식으로 혹은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세계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알릴 수 있는지 의문스러워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명쾌한 답도 줄 수 없다. 이 관계에서 오는 감정들을 사코는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그냥 이들을 외면하고 안전하고 안락한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자신과 맞지 않는 혹은 동의할 수 없는 전통이나 정치적 노선 등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빈정거린다. 약자라해서 그들의 모든 행동들을 옹호하지 않는다. 

 또 이 책은 당연히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너무 멀고 복잡한 문제라 생각해서 굳이 알아서 파헤쳐보지 않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새롭게 알게 되는 내용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알면 알수록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오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책은 꽤 균형적인 시각을 갖추고 있다. 이스라엘의 관점과 입장도 많이 제공한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과 실상을 알게되면 지금의 팔-이 문제는 시온주의자들의 생떼거리와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이해관계에 의해 시작됐단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이 하는 꼬라지를 보면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완전히 씨를 말려 없애버리려는듯 하다. 일제 식민치하의 조선 상황보다 훨씬 더 악랄하고 잔인한 행동들을 일삼는다. 이스라엘 군인들의 조준 사격은 아이들이라고 예외로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팔레스타인 마을에 처들어가 사람들을 구타하고 건물을 부수기를 밥먹듯 한다. 그들이 저항하면 총을 쏜다. 그래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런 정착민들의 활동을 활성화 할 수 있도록 국각적인 지원을 펼친다. 팔레스타인 인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고 철거 10분전에야 자기 집이 이유도 없이 헐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녁 8시 이후엔 통금이고 성질 더러운 군인들을 만나면 따귀를 맞거나 구두발에 차여도 반항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 영국의 승인하에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내고 지금의 땅에 몰려와 나라를 세운 근거는 다음과 같은 구약의 하느님 말씀들에 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대로, 너희 발바닥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 큰 강인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헷 사람의 땅을 지나... 

여호수아 1장 3절     
  


내가 새롭게 알게 된 큰 틀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은 성경 말씀을 근거로 지금의 땅을 자기들 것이라 우기고 혹은 믿고 있다.
2. 팔레스타인은 하나의 주권국가가 아니라 실질적으론 이스라엘의 통치를 받고 있다.
3.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든 활동(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은 이스라엘의 통제하에 있다.
4. 한마디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점령지의 어떤 전쟁포로들보다도 더 심각한 인권유린의 상황에 놓여있다.
5.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계속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으로 자신들의 정착민들을 이주시켜 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용역 깡패들이 철거민들을 괴롭히는 것보다 몇 배 더 심한, 하지만 본질은 똑같은 그런 활동을 조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로켓 공격 핑계로 가자지구 침공한 이스라엘 바퀴벌레 새끼들은 나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놈들은 절대 아니다.

 


스캔이 더럽게 됐다.
뒷면에 진한 사진이 인쇄된 이면지에 그린 것이 패인이다.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보고 삘 받아 그림.


이 책의 부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들의 노트'다. 벌써 냄새가 나지 않는가. 천재가 되고 싶은자 혹은 그들 천재성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알고자 하는자 이 책을 사라!

하지만 난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아직 학생 신분인 동생을 이용했다. 유용한 놈 크하하. 결론부터 말하자면 빌려 읽기 참 잘했다. 전체적인 구성이 산만하고 내용도 책의 제목과 부제를 통해 떡밥을 던져놓은 것만큼 매력적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후에 난 저자가 권한대로 나의 노트를 만들어 꾸준히 그것을 채워나가기로 결심했다. 왜냐면 사실 책을 읽기 전부터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었고 그 일환으로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수첩도 이미 데리고 있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혹했던 것이리라. 결국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얻고자 한 것은 그 노트의 운용 방법과 천재들의 구체적인 사례들이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의 시대에 노트는 구시대적이다. 하지만 노트의 유용함은 그 구시대적 특징에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오히려 편리한 정보수집 틀은 함정이 된다. 오늘날 인터넷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정보취합의 도구로 이용하는 블로그와 비교하여 노트 쓰기의 유용함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선물해 준다. 

몰두, 용이한 접근성, 직접적인 느낌.

사실 블로그에 뭘 정리하려다가는 삼천포로 빠지기 쉽다. 이메일 확인,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포털 찌라시 등등의 멀티 태스킹의 유혹이 도처에 널려있다. 하지만 노트는 지금 쓰고 있는 그것에만 몰두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요즘 누구나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고 하지만 노트북은 '전원 스위치를 켜고 운영체제가 부팅되기를 기다리고 파일을 열어 코멘트를 해야'하는 번거러움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노트는 갑자기 떠오른 중요한 생각을 곧장 기록할 수 있다.

또 자료를 붙여서 뚱뚱해지고 손글씨로 가득찬 때묻은 노트는 그 자체로 생각이 자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사실 시나리오 강의나 일러스트레이션 강의를 모두 들어본 나로서는 이 노트 쓰기가 낯설지 않다. '저널'이라고 불렸던 아이디어 노트 작성의 필요성을 두 수업 모두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무릇 작가라하면 장르에 상관없이 자신의 노트에 평소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해두고 그것을 취합하여 작품을 구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얘기다. 

이 영감어린 노트쓰기는 애완동물을 기르거나 작은 화분을 가꾸는 것과 비슷하다. 아니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양육'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노트라는 물질에 내 '영감과 생각'이라는 양분을 줌으로서 그것이 하나의 유기체로 진화되는 과정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트는 주제별로 하나씩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일단 잡다한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기록한 뒤 그것을 정리해서 다시 기록하거나 아니면 프린트해서 노트에 다시 붙이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렇게 구성된 노트의 물질성은 노트가 없었더라면 금방 흩날려버렸을 생각의 끈을 쉽게 놓치지 않게 해 줄 것이다.
 
이 책의 떡밥이었던 천재들의 노트는 그닥 특별하거나 실제로 내가 노트를 작성하는 데 유용한 팁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운용방식이 있으니 너도 니가 알아서 만들라는 교훈을 줄 뿐이다. 게다가 마지막 챕터에서는 엉뚱하게 '다중 지능' 이야기를 주제로 썰을 푼다. 아마도 천재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려는 시도였다고 보인다. 하지만 이런 산만한 구성은  '노트쓰기'와 '천재'라는 커다란 두 주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분량을 채우려고 억지로 껴맞춘 챕터라는 인상까지 받았다. 

마지막에 악평을 했지만 사실 하루만에 재미있게 읽었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빌려서'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끝으로 책에서 다룬 천재들 목록을 옮긴다.

아이작 뉴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이클 패러데이,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세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정약용, 엔리코 페르미, 벤자민 프랭클린, 임마뉴엘 칸트, 앙리 포앙카레, 헤겔.

중간에 파인만과 도스토예프스키도 잠깐씩 나온다.


 

 


빈센트 갈로, 2003

"입안에서 피맛이나"
-김현중, <MBC우리결혼했어요>

 2009년 신년 벽두에 내가 처음 본 영화인 <브라운 버니>는 비릿하다. 이 영화는 미괄식 문장처럼 마지막 시퀀스에 방점이 찍혀있으며 어떤 면에서 보면 <식스센스>같은 반전영화다.

하지만 영화의 구성은 치밀하게 조직되어 마지막 시퀀스를 향해 일방통행으로 에너지를 집중하기보다는 짐짓 아닌 척 멀리 돌아 목적지로 향하는 시간 많은 장기 여행자처럼 무던무던하게 황량한 미국 대륙을 훑는다.

그 무덤덤함이 이 비릿한 끝맛의 비법인듯. 처연하게 우는 남자의 웅크린 몸이 곧게 뻗은 도로위에 오버랩된다.

이 영화는 현장스텝은 총 6명으로 만들어진 듯 하다. 빈센트 갈로는 감독, 각본, 주연, 편집 등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6명이 만든 장편 영화라... 늘 그렇듯이 '정말 잘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보다는 만드는 과정이 매력적인 영화가 더 영감을 준다. 그 '과정'의 아우라가 영화의 매순간에 드러나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