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아름답고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가꾸는 일련의 활동을 통칭하는 것이라면 결국 우리는 한 두명의 위대한 건축가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없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이름있는 건축가의 작품인 건축물이 몇 개나 되는가. 테헤란로 어딘가에 높고 멋들어진 건물이 서 있는 것이 내 행복과 무슨 상관이 있나.  내가 사는 집, 자주 가는 가게, 동사무소, 버스정류장, 동네 공원. 결국 나를 기분좋게 해주는 대개의 건축물은 건축가들이 '컨트롤 해야 한다고 여기는 업자'들이 만들고, 평범한 공무원인 행정가들이나 소유주이거나 사용자인 시민들 스스로 관리한다. 결국 좋은 건축을 위해선 사회 전반전인 문화적 소양의 향상이 절실하다.   


머니볼, 베넷 밀러, 2011


이 정도 영화를 두고 '그저 그런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할리우드를 너무 과소평가 하는 게 아닐까. 이야기가 완결되지 못한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탓이다. 완전히 재구성하기에는 실제 사건이 너무 최근의 일이라는 점과 너무 많은 목격자가 있다는 점들이 분명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차라리 모티브만 따오고 완전히 새롭게 이야기를 쓰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딸의 에피소드가 전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해 작위적으로 보였고 눈물 가득한 브래드 피트의 눈동자 클로즈업 엔딩은 최악이었다. 거짓, 억지, 강요...이런 느낌을 주는 엔딩이다. 

귀부인과 승무원 swept away, 리나 베르트뮬러, 1974

 

계급적 적대감으로 서로를 미워했던 부르조아 귀부인과 선원은 무인도에서 표류하는 동안 문명의 틀에 포박당했던 스스로를 해방시키며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사랑을 얻은 그들이기에 갑작스런 구조선의 등장은 구원이 아니라 그들의 낙원을 파괴할 어두운 그림자였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 바깥세상에서도 굳건할 것임을 증명하고 싶었던 선원은 구조선에 신호를 보내고, 섬 깊숙히 숨어 구조선을 피하고자 했던 귀부인의 얼굴엔 불안감이 스쳐지나간다. 

문명 세계로 돌아오자 귀부인의 남편은 헬기로 마중오고 선원의 부인은 버선발로 방파제를 뛰어와 안긴다. 선원은 귀부인에게 다시 섬으로 돌아가자고 속삭이지만 고개를 떨군 귀부인은 남편의 헬기와 함께 하늘로 떠오른다. 이륙하는 헬기를 향해 절규하는 선원의 외침.

인간의 자유의지란 얼마나 기만적인 개념인가.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들이란 결국 내가 속한 시스템에 의해 이리 걸러지고 다듬어진 것들뿐. 나라면 절대로 그 섬에서 안 나왔을거야.

시점숏이 촬영 컨셉이었던 것 같다. 두 인물은 영화 내내 서로를 말없이 바라본다. 여자는 귀가 들리지 않고 남자는 두 팔이 없다. 서로에게 말을 건넬 수도 손을 뻗어 닿을 수도 없는 그들에게 유일한 소통의 몸짓이 '본다'는 행위임은 명백하다. 보통의 앵글에 익숙한 관객은 자꾸 숏의 끝에 가서야 방금 화면이 시점숏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지속적인 깨달음이 인물의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강제력이 된다. 

마법같은 장면: 남자는 두 발로 종종 기타를 연주하곤 한다. 집 앞 풀밭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남자. 그런데 사운드가 완전 묵음이다. 처음엔 영사사고인줄 알았다. 그동안에도 한번씩 사운드가 툭툭 끊겼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고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 순간 기타 연주를 멈춘 남자의 발이 귓가로 올라가더니 커다란 휴지 뭉치를 귓속에서 꺼낸다. 그리곤 서서히 앰비언스가 극장안을 울렸다!! 남자가 화면을 바라본다. 지금 본 이 화면도 역시 여자의 시점숏이었다. 다음 컷엔 여자가 물동이를 들고 수줍게 그런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남자의 시점숏. 

장률감독 특별전이라고 가서 본 영환데 유일하게 그가 연출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재중동포 김광호 감독의 데뷔작이며 모든 스텝이 조선족인 최초의 옌벤 영화라고 한다. 장률 감독은 제작에 참여했다.
 
 

  
20기 수료작 <데칼코마니>를 보고

현실과 영화적 리얼리티의 간극에 대해 재차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현실과 다른 영화 속 설정이 극중에서 그럴 듯 하게 여겨지고 심지어 그것 때문에 영화에 현실성이 부여된다면...... 바로 그 순간 영화는 거짓말로써 영화적 리얼리티를 획득하게 된다. 영화적 리얼리티란 결국 현실이 아니라 개연성에서 온다. 
   


대형 보험회사의 회계부에서 일하는 평범한 회사원 박스터는 회사 중역들에게 자신의 아파트를 빌려줘 그들이 불륜 상대와 밀회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그 자신은 그들의 호의로 인사고가에서 높은 성적을 얻어 고속 승진을 보장받게 된다. 승진건으로 박스터를 호출한 사장은 박스터의 승진 비결을 추궁하며 죄를 묻는 듯 하지만 이내 자신 역시 승진을 대가로 박스터의 아파트 열쇠를 얻고자 하는 속내를 드러낸다. 사장에게 열쇠를 빌려준 박스터는 승진을 약속받고 기분이 좋아져 자신이 짝사랑하는 엘리베이터 안내양 큐브릭과 극장에서의 데이트 약속을 잡지만 바람을 맞고 만다. 박스터는 승진해서 개인 사무실을 얻게 돼 들뜨지만 기쁨도 잠시 사장과 큐브릭이 내연의 관계임을 알고 좌절한다.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된 박스터는 술집에서 만난 여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가 사장과의 다툼 끝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한 큐브릭을 발견한다. 이웃집 의사의 도움으로 큐브릭의 목숨을 구한 박스터는 사장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힘들어하는 큐브릭을 달래는 한편 충실한 사장의 심복으로서 그들의 부적절한 관계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큐브릭을 자신의 아파트에서 간호한다. 박스터는 사장과 큐브릭이 화해할 수 있도록 통화를 주선하기도 하고 그녀가 다시 자살을 시도할까 노심초사하며 걱정한다. 그녀를 위해 즐겁게 요리를 하며최초로 둘만의 오붓한 저녁 만찬을 즐기려는 순간, 귀가하지 않는 처형이 걱정돼 박스터의 집에 쳐들어온 큐브릭의 제부가 박스터를 때려눕히고 큐브릭을 데려간다. 이때 큐브릭의 이마키스를 받고 자신의 사랑을 확신한 박스터는 사장에게 달려가 이 모든 사실을 고백하려한다. 그러나 사장 부인이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고 사장을 쫓아내 사장이 큐브릭과 지내기로 했으며 자신을 사장의 조수로 급승진시켰다는 사실에 박스터는 다시 한번 맥이 빠진다. 임원이 된 박스터는 큐브릭을 잊고 열심히 일에만 몰두하려하지만 사장이 다시 한번 자신의 아파트를 빌리려 하자 단호하게 거절하고 회사를 그만둔다. 사장으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들은 큐브릭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박스터임을 깨닫고 그의 아파트로 달려간다. 박스터는 자신에게 달려온 큐브릭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1.
SBS에서 툰드라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지난 주에 중간부터 보면서 흥미로웠는데 오늘 또 2부가 방송하는 걸 보게 됐다. 오늘 방송분의 주제는 툰두라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이었다. 여섯살 일곱살의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어른 못지 않게 순록을 몰고 자기 몸뚱아리 만한 물고기를 운반하고 장작을 다듬고 살아가고 있었다. 일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인정을 받고 이래라 저래라 어른들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측면도 있었다. 
툰드라 사람들의 인터뷰에 간혹 "우리는 어떻다."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외부와의 접촉이 어느 정도이길래 도시 사람들과 자신들을 비교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 접촉의 정도가 궁금했는데 끝까지 보면서 그 의문이 해소됐다. 툰드라 아이들은 6세부터 16세까지 도시의 학교로 반드시 의무교육을 받게 돼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툰드라의 자연을 벗어나보지 못했을법한 사람들이 실은 10년간의 도시 생활을 어느 정도는 경험했던 것이다. 
배신감이 조금 들었지만 동시에 그 사람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 난 이 사람들의 삶의 몇 장면을 편안하고 따뜻한 방에 앉아 티비로 보면서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미 이 생활에 몸과 마음이 젖은 나에게 저곳은 지옥에 가까울지도...저 사람들은 도시의 단물에 안 빠져봤으니 저리 살 수 있을 것이야....생각했더랬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근대 민족 국가의 최고 세뇌 도구인 공교육을 십년이나 받았던 사람들이고 (러시아는 이미 30년대부터 툰드라 사람들의 의무교육을 실시해왔다.) 선택의 기로에서 툰드라를 선택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에 18살 청년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의무교육을 마치고 귀향해서 살고 있는 젊은이였다. "도시의 삶은 편리하지만 허무하죠. 저는 어릴 때 부터 순록과 함께 커 왔어요. 그곳에 순록과 같은 자연은 없습니다."

2. 
표샘한테 애교부린다고 은하한테 징징거리다가 은하가 내 말을 잘 못알아듣는 것 같자. 무식한 거 아니냐고 핀잔을 주었다. 은하는 상처를 받았다. 나는 개새끼다. 정말 개새끼다. 옳고 바른 것 말만하고 머리로만 알고 있으면 뭐하나. 그 알량한 마음...내 옹졸한 마음 좀 뒤틀린다고 더러운 말을 내뱉었다. 정말 다시는 그 딴 개소리 입에 담지 말자. 쓰레기 강나루.






결국 사람은 사람에게 기대게 되어 있다. 마크는 페이스북을 만들고 돈방석에 앉게 되기까지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고 버리길 반복했다. 공동 창업자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왈도를 속여 회사에서 쫓아내다시피 내보냈고 페이스북의 영감을 얻었던 윙클보스 형제들도 기만했다. 왈도를 축출하는데 앞장서고 막대한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하여 페이스북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 숀 파커 역시 마크의 밀고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사업가의 면모를 보이는 마크가 마지막에 하는 행동은 페이스 북에서 자신을 찬 여자친구 에리카를 찾아 친구 신청을 하곤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이었다. 억만장자의 그 찌질한 모습이란.

페이스북은 인터넷 상의 세상이지만 결국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열망하는 사람들의 욕망에 기반해 있다. 마크는 이 매커니즘을 꿰뚫고 있었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그 자신이 가장 그 관계에서 열등하고 미숙한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마크는 찌질하면서도 교만한 태도로 일관하다 여친에게 차이며, 하버드의 엘리트 클럽에 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이런 상처와 열등감은 마크로 하여금 페이스북을 만들어 억만장자가 되도록 이끌지만 동시에 유일한 친구를 잃고 윙클보스 형제라는 적을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에겐 껌값일 뿐인 합의금으로 왈도와 윙클보스 소송을 마무리한 마크는 에리카에게 친구신청을 한다. 2시간 10분의 런닝 타임동안 벌어진 이 모든 일들이 그녀에게 말을 걸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던것처럼 허무하게 말이다. 
 

<파리대왕>, 해리 훅, 1990


1.
개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쉽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원래 다 그렇지...라고 말하면서 제 치부를 인류 공통의 문제로 손쉽게 떠넘겨버리는 게 영 탐탁치 않아서다. 다른 시대, 다른 문화 속에 한 번도 속해보지 않은 주제에 어찌 그리 쉽사리 인간의 본성에 대해 확신하는지 그 가벼움에 닻이라도 달아주고 싶다. 

자칫 <파리대왕>은 인간 본성에 대한 우화로 보일 수도 있다. 무인도의 폐쇄성과 아이들의 순수함이 그런 시각에 더욱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이 아이들은 표류될 때 군사학교의 제복을 입고 있던 아이들이다. 뗏목을 만들어 섬을 탈출했다가 러시아인들에게 구조되면 포로취급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아이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생존 실험의 양상이 인간 본성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의 비극적인 결말은 오히려 이 아이들이 그 때까지 자라온 사회의 축소판, 모든 분야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한 문명이라 스스로 자부했을 냉전시대의 반영인 것이다.

2.
'살해'는 <파리대왕>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다. 영화에는 총 네번의 살해가 벌어지는데 그 대상은 카멜레온, 벤슨 기장, 싸이먼 그리고 피기다. 이 살해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주요 인물들과 그들의 성격을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은 랄프와 잭이다. 랄프는 인본주의 성향의 리더이고 끝까지 섬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반면에 잭은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의 권위적인 리더이며 탈출보다는 섬 생활에의 적응에 더 무게중심을 둔다. 이 둘의 대립과 그에 따른 추종자들의 세력 재편이 영화의 주요 흐름이다. 랄프가 시종일관 같은 모습으로 평면적인 인물로 남는데 비해 잭은 점점 권력의 늪에 빠져 자신을 따르는 무리 전체를 광기의 불구덩이 속으로 이끈다. 추종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잭이 랄프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능한 리더로 보이는데 그의 통치술의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밥과 공포다. 채집을 위주로 하는 랄프 캠프에 비해 돼지 사냥에 주력하는 잭의 추종자들은 지속적으로 고기를 공급 받을 수 있다. 이 고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랄프를 떠나 잭에게로 투항한다. 또 잭은 추종자들의 마음 속에 공포심을 심어 놓고 그것을 컨트롤하여 통치한다. 잭의 무리는 섬의 한 동굴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와 조우한다. 잭은 그 생명체를 '괴물'로 부르며 자신들의 공동체를 위협하는 가상의 적으로 삼는다. 이로써 추종자들은 늘상 보이지 않는 외부의 적과 대항해야 하는 공동체의 파수꾼으로 강제된다.  
   
하지만 실상 그 괴물은 이들의 표류가 시작될때 함께 섬에 떠밀려온 벤슨 기장이다. 이미 바다 속에서부터 심각한 부상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그는 정신이상 때문에 혹은 잭의 무리가 자신을 제거하려하는 낌새를 느끼고 아이들로부터 달아나 동굴 속에 몸을 숨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처음 발견한 잭의 추종자가 놀라서 찌른 창에 이미 목숨을 잃은 채 괴물로 불리웠던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은 호기심 많고 생명에의 사랑으로 충만한 싸이먼에 의해 밝혀진다. 벤슨이 도망치기 전부터 그를 간호했고, 숲에서 만난 카멜레온을 늘상 데리고 다녔던 싸이먼은 흉흉하게 퍼진 괴물 이야기에 곧 벤슨을 떠올리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 그의 시체를 확인한다. 마침 해변에서는 잭의 무리들이 사냥한 돼지와 모닥불을 놓고 광기에 찬 사냥 의례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을 향해 야광봉을 밝힌 채 해변을 달려오던 싸이먼은 엑스터시 상태의 아이들에게 괴물로 보이고 그들로부터 무자비한 공격을 받는다. 차갑게 식은 싸이먼의 등에는 무수한 창구멍이 뚫렸다.

싸이먼의 죽음 이후 랄프의 무리에는 피기만이 남았다. 피기는 섬에서 유일하게 안경을 쓴 아이로 뚱뚱하고 신참인지라 시종일관 랄프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피기의 안경 렌즈는 불을 피우는데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에 잭 일당이 한밤중에 습격해 강탈해가기에 이른다. 랄프와 피기는 안경을 되찾으러 갔다가 잭과 충돌한다. 그 와중에 피기는 아이들을 설득하는데 처음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야유를 보내던 아이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듣자 조용해진다. "언제까지 애들처럼 굴순없어. 구조되지 못한다면 평생 여기서 지내야 할 수도 있어. 이젠 이성적으로 행동해야돼."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을 들어서일까 피기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절벽위에서 한 아이가 굴린 커다란 바위가 피기를 덮친다. 

3.
싸이먼이 돌보던 카멜레온은 잭의 무리에게 사냥 연습용으로 죽임을 당한다. 역시 잭이 돌보던 부상당한 벤슨 기장은 잭의 무리에 의해 괴물로 오인받아 죽임을 당한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싸이먼은 엑스터시 상태의 잭 무리에게 괴물로 지목당해 죽임을 당한다. 현실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던 피기는 잭의 무리에 의해 의도적으로 살해당한다. 

첫번째 살해에서 네번째 살해로 갈수록 잭 무리의 살해의지가 강해진다. 카멜레온의 살해는 관객에게도 충격이 덜 하다. 쟤네 왜 저러니 정도의 반응이다. 벤슨의 살해는 첫 번째 살'인'이지만 살해가 목적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 자기방어의 행동에 의한 것으로 사고에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세번째 싸이먼의 살해는 충격적이다. 광란의 엑스터시 상태였지만 초록빛 야광봉 하나로 싸이먼을 괴물로 지목하여 떼로 창질을 하는 모습은 매우 잔인하게 느껴진다. 특히 '괴물'이라는 실체없는 위협의 진실을 알아낸 싸이먼이 한 마디 말은 커녕 반응숏 하나 없이 창질 후에 시체로 남겨지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힐만하다. 네번째 피기의 살해는 갈데까지 간 아이들이 폭력에 무감각해진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나이 어린 아이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다. 

마지막 씬은 랄프와 그를 쫓는 잭 무리간의 추격씬이다. 잭 무리는 랄프를 잡기 위해 온 섬에 불을 지르고 토끼몰이 하듯 그를 쫓는다. 질주하던 랄프는 숲을 벗어나 해변의 모래사장으로 넘어지듯 튕겨나간다. 그의 눈 앞에 서 있는 쌩뚱맞은 군인 하나. 너희들 여기서 뭐하니. 순간 랄프는 막 악몽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운다. 간발의 차이로 랄프의 발치에 도착한 잭과 아이들은 랄프 너머로 보이는 헬기와 군인들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다. 이들의 표정은 선생님 앞에 불려나와 혼날까 두려워하는 학생의 표정이다. 그 불안한 눈망울이 소름돋도록 순진하다. 

4.
원작을 읽지 않았지만 영화만으로 볼 때 제목 <파리대왕>이 가리키는 것은 아마 잭인 듯 하다. 영화에서 파리가 등장하는 곳은 한 장소 뿐인데 바로 괴물의 동굴 앞이다. 그곳에 괴물이 있다고 선언한 잭은 사냥한 돼지의 머리를 따서 창에 꽂아 세워둔다. 괴물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그 썩은 돼지 머리에 파리떼가 시커멓게 꼬인다. 그러므로 파리대왕이란 호칭은 '괴물'이라는 가상의 위협을 통해 공포와 불안을 통치의 도구로 삼은 폭군 잭을 비꼬는 이름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너무나 질기고 오래된, 또 앞으로도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은 거대한 괴물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괴물을 이용하는 파리대왕들은 너무나 많다. 반면에 이 땅의 싸이먼들 늘상 죽임을 당하고 있다. 싸이먼들이 많아지고 피기들이 더 많이 살아남는다면 한번쯤 노예가 아닌 상태로 살아볼 수 있겠지.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