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본 영화 중에 가장 유쾌하고 아름다운 팝콘 무비였다. 스펙타클도 이 정도로 밀어부치면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야하나. 유쾌하게 보고 즐기면서 스트레스 푸는 용도로 최고! <아바타> 보면서 실망한 3D 의 가능성을 재발견했다. 초반 드래곤들과의 액션씬은 어지럽고 정신사나웠지만 용타고 하늘을 나는 드라이브 장면과 마지막 왕용과의 공중대결 씬은 정말 너무너무아름다웠다. 드림웍스 만세!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직 3D 는 보고나면 눈도 좀 아프고 답답하다.






copyright ⓒ 미메시스, 2010


 
Batien Vives, <Le gout du chlore>
헐렁한 그림체와 수영장의 푸른 빛. 완벽한 완급의 연출과 짝사랑의 달콤씁쓰름함. 이것이 염소의 맛입니다. 수영과 그림그리기를 하고 싶게 만드네요. 메~헤헤헤에에
 


죄악의 천사들, 로베르 브레송, 1943

1
안느 마리는 속세의 화려함을 좋아하는 처녀임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마음에 이끌려 수녀가 된다. 그녀가 머무는 수녀원은 교도소의 출소자들을 받기도 하는 개방적인 수도원인데 원장 수녀를 따라나선 교도소 방문에서 안느 마리는 떼레즈라는 난폭한 여죄수를 만나게 된다. 이 만남 이후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확신한 안느 마리는 떼레즈를 수도원으로 데려와 그의 후견인이 되기를 자처한다. 하지만 출소한 떼레즈는 처음에 수도원 행을 거절했다가 자신을 감옥에 가게 한 전 남자친구을 살해한 후에야 도피처로 수도원을 이용한다. 안느 마리는 떼레즈에게 신심을 쏟는 데 몰두한 나머지 수도원의 규율을 어기고 다른 수녀들과 마찰을 일으킨다. 안느 마리의 관심이 귀찮은 떼레즈는 안느 마리와 생 존 수녀를 이간질 하여 결국 안느 마리를 내쫓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신실한 안느 마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밤마다 몰래 수도원에 들어와 설립자의 무덤 앞에서 기도를 올리다 병약한 몸을 주체 못하고 쓰러진다. 결국 안느 마리는 수도원에서 원장 수녀님과 동료 수녀들의 애도 속에 죽음을 맞이 한다. 떼레즈는 안느 마리의 헌신적인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며 수도원을 찾아온 경찰에게 손목을 내주어 수갑을 찬다. 

2
영화사에서 유일무이한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한 브레송의 첫 번째 장편작품인 만큼 이후에 정립된 그의 영화형식과의 비교를 통해 그가 출발점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는가를 가늠해보는 것이 흥미로운 감상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브레송 초기 영화들과 일맥상통한다. 신실한 희생과 숭고한 죽음. 신념을 위해 어떠한 장애물에도 타협하지 않고 설사 그 끝에 죽음이 놓여 있다해도 멈추지 않는 인물들은 브레송 영화의 전형이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무엇보다 <죄악의 천사들>에서 배우들은 연기를 하고 있다. 연기는 연극의 산물이며 영화에서는 필요없다 라는 브레송의 영화관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이다. 또 클로즈업을 통한 제유법을 구사하는 화면구성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화려하고 매끄러운 카메라 무빙이 종종 발견되고 전통적인 방식의 컷 구성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또 사운드와 이미지를 비종속적으로 사용하는 그의 개성도 아직은 눈에 띄지 않는 듯 했다. 다만 과감한 내러티브의 생략과 파편화된 에피소드의 구성은 맹아적인 형태로나마 존재함으로서 후에 만개하는 브레송 스타일의 본류로 여겨질 만하다. 

3
위의 특징들과 더불어 관념적인 대사들은 영화의 내용 파악을 어렵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한글 자막으로 본 대사들이 과연 프랑스어로 된 본래의 대사와 과연 어느 정도의 간극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첫 시퀀스의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한 여죄수의 수도원 입성 장면은 수녀원에 대한 설명을 위한 정보 제공 외에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지, 또 그 수녀는 안느 마리와 떼레즈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질문하게 됐지만 어떤 유효한 답을 구하지 못했다. 좀 더 생각해볼 문제다.
   



Finding Forrester, Gus Van Sant, 2000 
 
1
포레스터 
(자말과 마주앉아 타이핑을 하면서, 탁탁 탁탁탁...)
네가 이 자판을 치기 시작하면 너도 글을 쓰기 시작하는 거라구.

자말 
……

포레스터 
왜 문제가 있니?

자말 
아니요 생각하고 있어요.

포레스터 
안돼 생각하지 마라. 생각은 나중에 하렴. 
넌 너의 마음으로 초안을 써야해. 그리고나서 머리로 수정을 하는 거야.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요점은 글을 쓰는 거야. 
생각하는 것이 아니구.

2
<파인딩 포레스터>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장르영화다. 개천에서 용나는 줄거리이면서 상처받은 어르신의 상처 치유기이기도 하다. 이무기에서 용이 되려는 자말의 유일한 반대 세력은 크로포드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학교의 이사회이다. 물론 이 이사회에는 자말과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클레어의 아버지를 포진시킴으로써 로미오와 줄리엣의 구도가 성립된다. 자말의 성장배경과 재능을 일치시키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크로포드는 그를 의심하고 이것이 자말과 은둔 작가 포레스터를 곤경에 빠뜨린다. 하지만 포레스터와의 신의를 지킨 자말의 우정과 뛰어난 글쓰기 재능은 포레스터를 세상 밖으로 끌어냄과 동시에 영화상의 모든 갈등을 해결하고 종결시킨다. 

2000년 개봉 당시에 봤을 때는 재즈 풍의 썸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가 흐르는 풍경 위로 밤거리를 자전거로 달리는 포레스터의 매끄러운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된 영화로 기억됐다. 하지만 오늘 다시 본 <파.포.>는 <게리>,<엘리펀트>,<라스트 데이즈>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을 생각하면 의외로 다가오는 영화다. 

<파인딩 포레스터>에서 흑인 소년 자말이 겪는 갈등이 해결되는 방식은 일방적이고 일회적이다. 글쓰기 경연대회에 포레스터가 나타나 자말의 편지를 읽으며 분위기를 반전시킬 때도 크로포트 교수는 완고했다. 하지만 그에 무색하게 이사회의 다른 교수는 크로포트의 발버둥을 제압하고 자말의 손을 들어준다. 결국 자말을 가로막고 섰던 것은 크로포트 교수의 자존심 뿐이었다. 모든 오해는 포레스터가 풀었고 그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게 한 것은 자말의 능려과 신의를 지킨 우정이었다. 이것은 판타지다. 그것도 진실을 가리는 위험한 판타지. 이 영화의 소재는 매력적이다. 가난한 흑인 소년의 뛰어난 재능이 상처 받은 위대한 작가의 영혼을 치유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장르영화는 감독이 소재에 대해 가지는 정치적 선의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정반대의 효과를 내기 쉽다. 이 상황에서 나는 타란티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건강한 장르영화란 오히려 타란티노의 영화들이 아닐까. 

구스 반 산트의 필모를 보면 본인이 하고 싶은 영화와 해야 하는 영화를 번갈아 찍은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유연하고 현실적인 행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의 취향은 극단의 경계에선 사람들에게 우호적이다. 브레송처럼 말이다.

조형적 이미지로 구성된 얼굴 없는 군중.
심지어 가장 안쪽 사람은 이본이 지나가는데도 계속 얼굴을 술집 안쪽으로 향하고 섰다. 

저 입술...



이 영화의 원동력은 거의 전부 힛걸에게서 나온다. 쟤가....저거저거....아이구....아....카타르시스와 염려가 뒤범벅댄 감정으로 힛걸을 바라보다보면 영화는 술술 잘 흘러간다. 킥 애쓰는 각성하는 찌질이의 전형에서 그 각성의 정도를 얕게 조절한 전형적인 캐릭터일 뿐이며 슈퍼 히어로의 인간적인 고뇌를 담기에도 그릇이 작다. 정작 그는 전혀 슈퍼 히어로도 아니지...오직 힛걸만이 그 액션만큼이나 화려하고 다양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조금이나마 활용한다. 어차피 영화는 그런 측면에서의 목표를 크게 잡고 있는 것 같진 않지만서도. 
후속편을 작정하고 만들겠다는 엔딩을 보면서 다음 편의 힛걸은 좀 더 섹시할 수 있는 나이 때로 성장해서 나오지 않을까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 발칙한 꼬마 배우가 실제 성장한 모습으로 재출연할 수도 있겠군. 개인적으로는 저 입술의 잠재력을 매우 크게 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힛걸은 이미 이 영화에서도 귀여움을 가장해 킥애스에게 손키스를 날린바 있다. 그리고 스쿨룩 베이스의 여전사라니 이미 충분히 오덕스럽다.  

레옹의 마틸다



그나저나 난 계속 마틸다가 오버랩됐다. 이 사진은 좀 노숙하게 나왔다만 마틸다도 엄청 꼬마였는데... 
단발에 도톰한 입술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지. 실력은 극과 극이지만 둘다 총도 좀 들어주시고.

마틸다 생각난 김에 레옹이나 다시 볼까하는데 이것도 보려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서..쉽지 않다.  

1. 노베르네: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고 가불에는 실패하는 노베르.
2. 거리: 오토바이 노베르.
3. 마티알의 방: 마티알로부터 위조지폐 사용을 권유받는 노베르. +왜 미술작품 스크랩북을 보는가.
4. 사진관: 위조지폐를 사용해서 액자를 구입하는 노베르와 마티알.
5. 사진관: 직원에게 화를 내고 위조지폐 사용을 결심하는 사장.
6. 사진관 외부: 유류 주입구에 기름을 넣고 서류를 작성하는 누군가.
7. 사진관: 유류 청구서를 제시하는 이본에게 위조지폐로 비용을 지불하는 사장과 현상직원.
8, 까페 앞: 트럭에서 내려 까페로 들어가는 이본.
9. 까페 안: 찻값으로 위조지폐를 지불했다가 주인에게 위조지폐 유통범으로 모욕을 당한 이본, 까페 주인을 밀친다.
10. 사진관 앞: 경찰차가 들어온다. 차에서 내린 이본과 형사가 사진관으로 들어간다.
11. 사진관 안: 사장과 현상직원으로부터 자신을 모른다는 대답을 듣고 형사에게 다시 끌려가는 이본.
12. 이본네 현관: 이본이 열쇠를 열쇠구멍에 넣기도 전에 먼저 문이 열리면서 어린 딸이 나와 이본을 맞이한다.
13. 이본네: 사진관 사장을 고소하기로 한 이본 부부.
14. 변호사 사무실: 상황을 요약하며 승소를 확신하는 변호사. 이본 부부가 변호사 사무실을 나선다. 
15. 법정: 거짓 진술, 변호, 아내와 딸, 고소 취하, 여직원을 달래며 루시앙(현상직원)에게 옷 사입을 돈을 찔러주는 사장.
16, 사진관: 가게로 들어오는 루시앙과 사장, 여직원. 걱정하는 루시앙을 안심시키는 사장.
17. 이본네 회사: 트럭에서 내리는 이본. 복직을 요청하라는 부인과 두드려맞은 개처럼 기어가기 싫다는 이본.

18. 사진관: 가짜 가격표를 붙이는 수법으로 카메라 판매금 일부를 빼돌린 루시앙. 가게로 사장과 여직원이 들어오자 암실로 숨는다.
19. 암실: 가짜 가격표를 들고와 해고를 통보하는 사장.
20. 사진관 앞: 해고돼 나오는 루시앙,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을 만나 금고 열쇠를 보여준다.
21. 학교 앞: 오토바이를 타는 노베르와 마티알, 사진관 여직원과 마주치자 혀를 쑥 내밀고 도망간다. 학교로 향하는 여직원.
22. 학교 안: 여직원이 교감을 만난다. 여기 학생에 대한 일입니다. 이름을 아실 거에요.
23. 교실: 교감이 수업 중 넌지시 죄의 고백을 요구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망가는 노베르.
24. 학교 앞: 정문을 나서 오토바이를 타고 출발하는 노베르.
25. 노베르네: 아빠가 몰라야 한다며 노베르에게 어떤 경우에도 죄를 부인할 것을 당부하는 엄마, 집을 나선다.
26. 사진관 앞: 사진관으로 들어서는 노베르 모.
27. 사진관 안: 여직원에게 없던 일로 해 달라며 사례하는 노베르 모. 여직원은 문을 열어 배웅하고 봉투를 열어 속을 들여다 본다.
28. 노베르네 현관 앞: 노베르를 나무라며 엘리베이터를 타는 노베르 부.

29. 노천 까페 앞: 까페 직원으로부터 모종의 제의를 받고 그를 따라 까페로 들어가는 이본.
30. 은밀한 방: 치마를 걷어 올린 채 소파에 누워 잡지를 보는 여자(왜 등장했을까) 범행 모의를 하는 직원과 이본.
31. 노천 까페 앞: 모의 마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음료를 마시는 이본. 자리를 뜬다.
32. 이본네: 작은 아기(침대에서 꼬물꼬물)에 키스하고 허접한 식탁의 식은 커피를 마시고 집을 나서는 이본. 뒤에 남은 아내의 걱정.
33. 은행앞 거리: 차를 세우고 대기하는 이본. 은행 앞은 경찰과 은행강도 사이의 인질극, 대치, 총격전. 순찰 중인 경찰의 의심을 받자 도주하는 이본. *신문 보며 걸어가는 할아버지를 매개로 공간을 설명하는 방식-극적으로 대치 상황을 제시하는 방식!
34. 도로: 경찰차에 쫓기는 이본. 속력을 높이다 마주 선 차량을 피하고 다른 차량과 충돌하며 멈춘다.
35. 경찰서: 남편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이본의 아내. 신문. 무뚝뚝하게 이본의 행방을 알려주는 경찰관(마음에 드는 캐릭터). 아내.
36. 법정: 3년형을 선고 받는 이본. 수갑이 채워지고 아내를 바라보는 이본. 법정 문 밖에서 아이를 안아 들고 나가는 아내.
37. 교도소 마당: 수감자 버스가 백. 짐들이 먼저 내려지고 경찰관 하나에 수감자 하나씩 내려온다. 수갑 채워진 채 자기 짐 들고 들어감. 이본은 두 번째로 나옴.
38. 교도소 내부 철문: 수감자들이 모두 들어가면 철문이 닫히고 열쇠로 잠궈진다.
39. 사진관 외부: 사장과 여직원이 비상벨이 열리고 있는 가게 안으로 급히 들어간다.
40. 사진관 내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문에 서서 비상벨이 울리는 2층을 잠시 바라보다 뛰어올라간다.
41. 사진관 2층: 여직원과 사장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활짝 열린 금고문과 흐트러진 서류 종이들.
42. 지하철역: 큰 가방을 들고 입구계단을 내려오는 루시앙과 일당들. 미묘하게 가슴이 부각되는 의상을 입은 여성 행인이 계단을 올라오는 동안 일당들이 계단을 내려간다. 역을 떠나는 차량을 집어삼키는 검은 터널.-범죄의 순간에 드러나는 성적 이미지의 혐의포착!과연...?
43. 교도소 59호 감방: 간수가 이본에게 면회를 통보한다. 무슨 종이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방을 나서는 이본. 문 잠그는 간수.
44. 교도소 내부 철문: 철문 앞에 잠시 섰다가 삐 소리에 문이 열리면 나아가는 죄수들. 면회실로 내려가는 이본.
45. 면회소: 계단을 내려온 이본이 번호표를 나눠주는 손으로부터 표를 받고 프레임 아웃. 손은 서류에 체크. 다음 사람도 이하동문. 받아든 번호표를 보고 면회실을 찾아 들어가는 죄수들. 아내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이본. 축약적인 다이알로그. 이별을 선언한듯 먼저 일어나 버리는 아내. 참담할 이본의 표정 대신에 나가버린 아내가 사라진 긴 복도의 풍경을 보여준다. 
46. ATM기 앞 밤거리: ATM기에서 돈을 찾는 사람. 루시앙이 기웃거린다. 기계가 카드를 먹자 당황한 듯 차를 타고 떠나는 남자. 루시앙 집게로 ATM기에서 카드를 꺼낸다. 근처에 서 있던 일당에게 상황 설명. 훔친 카드를 이용해 돈을 찾는 루시앙.
47. 교도소 마당: 하얀 트럭이 들어온다. 뒷문이 열리고 우편물 바구니와 가방이 내려진다. 
48. 교도소 우편 관리실: 여죄수들이 둘러앉은 테이블 위로 우편물바구니가 놓여지면 한 움큼씩 쥐어들고는 내용물을 뜯어본다. 딸아이 이베뜨가 죽었다는 내용의 아내 엘리제의 편지.  
49. 교도소 감방: 이본의 침대 옆 바닥에 놓여진 편지. 동료 죄수 둘이 슬그머니 다가와 편지를 가져가 읽는다. 다 읽곤 편지를 제자리에 이본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가 돌아본다. 벌개진 얼굴. 동료 죄수들 삶과 죽음에 대해 논평하고 한잔한다. 매트리스에 숨겨지는 술병.
50. 사진관: 친분이 있는 손님과 얘기 나누는 사장과 여직원. 루시앙이 부자가 되서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곤 편지함에서 루시앙의 편지를 꺼내 읽는다. 수표가 첨부된 편지에는 위조지폐로 나에게 나쁜짓을 시켰어. 나도 이본에게 같은 걸 하게 할거야. 
51. 교도소 우편 관리실: 이본의 편지 여러통이 수취인불명으로 반송되어 돌아온다. 
52. 교도소 식당: 이본 부인에 대한 주변 동료들의 추측성 멘트에 흥분한 이본이 대형 국자를 집어들자 간수가 말린다. 국자를 바닥에 내팽게치는 이본.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미끄러져 벽에 부딪히는 국자.
53. 교도소 내 복도: 양복입은 사람들과 간수장인듯한 사람이 이본에 대해 얘기한다. 침착하다. 위험인물은 아니다.
54. 교도소 징계위원회실: 소장으로부터 '징벌구역 40일'의 과도한 징계를 받는 이본.
55. 교도소 감방: 간수가 이본의 개인짐을 모포에 싸서 밖으로 가지고 나온다.
56. 교도소 창고: 모포에 쌓인 이본의 짐을 선반위 다른 짐들 사이에 올려놓는 간수.
57. 교도소 우편 관리실: 엘리제로부터 온 편지가 여죄수들의 손에 손을 거쳐 담당자에게 전해진다. 완전한 결별 선언의 내용. 보류 도장이 찍힌채 담당자의 책상위에 놓이는 편지. 그 아래 같은 편지가 몇 개 더 있다.
58. 교도소 징벌구역(독방): 간수가 독방에 들어가자 뭔가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난다. 이본의 목소리가 시간과 요일을 묻는다. 간수가 다시 나간다. 누워서 밥그릇으로 바닥을 긁고 있는 이본. 간수가 의사를 데려온다. 이본에게 알약 두알을 준다. 간수와 의사가 나가자 삼키지 않고 입안에 있던 알약을 뱉어낸다. 매트리스 속 신무지 조각 속엔 이미 많은 양의 알약이 모여있다. 
59. 교도소 감방(밤): 이본의 동료 죄수들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앰뷸런스에 실리는 이본. 한 죄수가 자살자를 위해 기도한다. 
60. 병실: 머리 맡에 보류됐던 편지들이 놓여 있다. 링겔을 꽂고 삑삑 소리를 내는 기계들에 둘러쌓여 있는 이본. 
61. 법정: 루시앙과 일당이 재판을 받고 있다. 루시앙은 특별한 목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변론한다.
62. 교도소 마당(37과 동일): 수감자 버스가 백. 짐들이 먼저 내려지고 경찰관 하나에 수감자 하나씩 내려온다. 수갑 채워진 채 자기 짐 들고 들어감. 루시앙은 두 번째로 나옴. 버스 옆으로 앰뷸런스가 들어오더니 이본이 내린다.
63. 교도소 내부 철문(38과 동일): 수감자들이 앞서 가고 이본이 뒤이어 들어가면 철문이 닫힌다.
64. 교도소 감방: 새로운 동료죄수가 충고한다. (내용을 못 알아먹겠다) 복도를 청소하는 죄수가 미사에 참석하라는 루시앙의 메세지를 전한다. 동료는 말린다.
65. 교도소 성당: 죄수들간의 물물교환이 성행하는 미사시간. 루시앙이 이본에게 함께 탈옥할 것을 제안한다. 나가면 이본에게 종사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본은 거절한다.
66. 교도소 감방: 적막한 교도소에 싸이렌이 울리고 복도에 불이 켜진다. 간수들이 바쁘게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루시앙의 탈옥. 이본은 안타까운듯. 동료는 위로한다. 이본 아내의 결별 선언 편지를 보여준다. 문 탕탕.
67. 교도소 정문 안쪽: 이본이 몇 몇 간수들과 철문을 통해 정문쪽으로 나아간다. 서류를 확인하고는 이본에게 서류를 주고 내보낸다.
68. 거리: 출옥 증명서를 보면서 걷고 있는 이본. 접어서 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69. 호텔 앞: 출입문에 노크하자 안주인이 문을 연다. 카운터 너머 사장이 앉아 있다. 들어가는 이본. 호텔 간판.
70. 호텔 내 계딴: 이본이 가방을 멘 채 내려온다. 
71. 호텔 내 세면대: 이본이 물을 틀고 손을 씻는다. 세면대에 흐르는 물 사이로 붉은 핏물이 흐르다 사라진다. 가방챙기고 지퍼를 채우는 이본.
72. 호텔 내 카운터: 서랍을 뒤져 돈을 챙기는 이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73. 장난감 가게 앞: 이본이 진열대 속 장난감들을 바라보고 있다. 지나가던 여인이 이본과 눈이 마주친다. 이본 여인을 따라간다.
74. 은행 앞: 은행으로 들어가는 여인.
75. 은행 내 창구: 연금 카드(?)를 보여주고 돈을 수령하는 여인. 프레임 아웃.
76. 은행 앞: 은행에서 나오는 여인. 여인이 돈을 핸드백에 고쳐 넣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본. 프레임 아웃.
77. 실개천 다리: 여인이 다리를 건너고 있고 저 멀리 여인을 따라오는 이본의 모습이 보인다. 
78. 여인네 현관: 여인이 문을 열자 개가 나온다. 여인은 개와 함께 이본을 보다가 집으로 들어간다. 
79. 실개천 다리: 이본 다리 난간을 잡았다가 뒤돌아서 천천히 걸어간다. 
80. 여인네 부엌: 개가 밖을 향해 짖고 있고 여인은 그릇들을 닦고 있다. 그 때 이본이 들어와 구석 의자에 앉는다. 이본이 배고프지만 저녁을 거르겠다고 말하자 여인은 집 안쪽으로 간다.
81. 남편(?)방문 앞: 여인이 남편의 방문을 조심히 닫는다.
82. 누구 방: 자고 있는 누군가. 여인이 이불을 덮어주고 스탠드 불을 끄고 방문을 곱게 닫고 나간다.
83. 여인네 부엌: 여인이 이본에게 살인에 대해 묻는다. 이본은 연신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호텔 살인에 대해 상술한다. 안쪽에서 나는 소리에 이본은 움찔하고 여인은 이본을 진정시킨다.
84. 여인네 계단: 두 사람이 계단을 올라간다. (컷 시작에 한 사람은 이미 계단에 있고 다른 사람이 프레임 인! 떨어져 걸어야 가능)
85. 여인네 부엌: 내 누이동생과 의붓남동생이에요. 아이의 부모. 이본이 개를 쓰다듬는다. 또다른 누이동생 꼭대기 방. 당신은 좋은 사람이군요. 날 비난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았어요. 
86. 여인네 집 앞길(밤): 경찰차량들이 싸이렌을 켜고 지나간다.
87. 여인네 부엌: 커피를 대접에 따르고 밖으로 나가는 여인. 
88. 헛간 가는 오솔길: 아버지와 마주쳐 이본에 대한 대화. 아버지에게 따귀를 맞는 여인. 커피가 대접에서 흘러 넘쳐 대접을 꽉 붙든 여인의 손 위로도 흐른다.
89. 여인네 헛간: 헛간에 누워 있는 이본의 머리 맡에 커피를 두고 나오는 여인. 이본은 일어나 커피를 한잔 마시고 이불을 개다가 짚더미 속의 도끼를 발견한다.
90. 여인네 아버지방 피아노: 피아노 위의 술병과 유리잔. 여인의 아버지가 화려한 손놀림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다. 
91. 여인네 부엌 창가: 여인이 다림질 선반 위에 하얀 옷가지를 놓고 다림질을 하고 있다. 다림질한 옷을 쌓고 걸어나가면 구석에 앉아 있는 이본이 보인다. 
92. 여인네 아이의 방: 휠체어 탄 아이가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 여인이 다가가 가볍게 키스하고 떨어진 노트와 연필을 올려준다. 
93. 여인네 복도 : 여인이 방에서 나와 문을 잠그고 복도를 걸어 아버지방 쪽으로 가 문을 열고 들어간다.  
94. 여인네 아버지방 피아노: 아버지는 계속 피아노를 치고 있고 여인은 그 곁에 지나쳐 부엌으로 가는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버지는 피아노를 치면서 술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고는 피아노 건반 옆에 위태롭게 술잔을 놓는다. 쨍그랑. 
95. 여인네 부엌: 옮기던 다림질한 옷을 내려놓고 쓰레받이와 걸레를 챙겨 나가는 여인. 
96. 여인네 아버지방 피아노: 깨진 유리잔을 쓰레받이에 담고 마루 바닥에 묻은 술자국을 걸레로 훔치는 여인. 일어나서 부엌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동안 아버지는 무덤덤하게 악보를 넘기며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97. 여인네 부엌: 깨진 잔을 버리고 물을 틀어 손을 닦는 여인. 이본에게 훌륭한 가장이었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98. 감자밭: 여인이 땅을 뒤집자 감자 덩쿨이 튀어나온다. 치마에 감자를 담는 여인.
99. 흙길: 앞서서 감자가 그득 든 바구니를 들고 가는 이본과 따라가는 여인.
100. 부엌: 감자 바구니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오는 이본과 여인. 여자는 복장을 해체하고 외출용 겉옷과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아버지가 나와 문간에서 어디가냐고 묻고 여인은 금방 오겠다고 답한다. 이본이 아버지를 본다. 부엌 창밖으로 보이는 아버지는 밭을 거닐고 있다. 급하게 두개의 문을 지나 여인의 방문을 여는 이본.
101. 여인의 방: 서랍장, 책상, 옷장, 매트리스를 뒤지는 이본. 아무것도 발견 못하고 뛰어나간다. 
101. 빵집: 여인이 빵을 사서 나오는데 경찰 둘이 여인과 스쳐지나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여인은 경찰들을 흘끔 바라본다. 
102. 사거리: 모퉁이에 경찰차 두대가 서 있고 여인이 그 앞을 지나가면 경찰 둘이 여인의 뒤에서 빵을 들고 와 기다리던 경찰차 안으로 넣어준다. 
103. 빨래터: 빨래하는 여인과 대화하는 이본. 맞았어요? 자살하지 않느냐. 기적을 기다리냐. 여인은 말한다.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다.
104. 빨랫줄이 있는 마당: 여인이 수레에 빨랫감을 실어 나른다. 이본은 가는 중에 나무에서 열매를 딴다. 둘은 빨래를 널며 열매를 나눠먹는다.
105. 현관문: 램프가 문고리를 비춘다. 도끼를 든 손이 도끼날을 문틈에 집어넣은 문을 연다. 
106. 부엌: 암흑. 개 짖는 소리. 서서히 램프가 부엌을 밝힌다. 도끼와 램프를 든 이본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문과 아버지의 방(문을 열면 피아노가 보인다)을 열고 들어간다. 
107. 알수없는곳: 문틈으로 빛이 비치더니 문이 열리고 이본이 들어와 램프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108. 여인여동생과 이복 남동생의 방: 문이 끼익 열리고 개가 나오고 둘의 하반신이 불안하게 문간에 서 있다. 
109. 계단: 개가 급히 내려간다.
110. 복도: 바닥에 램프가 놓여져 있고 개가 문이 열린 방안으로 들어간다.
111. 아버지방: 아버지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아버지 곁에 잠시 머무른 개가 다시 나간다. 
112. 복도: 램프 곁으로 개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113. 계단: 이본이 내려오고 개는 올라간다. 중간엔 여인의 여동생이 쓰러져 있다. 개는 다시 내려온다. 
114. 복도: 이본이 램프 곁을 도끼가 든채 지나가고 개가 그를 따라간다. 여인의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115. 여인의 방: 개가 이본을 앞질러 여인의 방과 연결된 옆 방으로 들어간다. 
116. 소녀의 방: 침대위 소녀가 흐느끼고 있다. 개가 다시 나간다.
117. 여인의 방: 개가 다시 들어와 멈춰선다. 여인이 침대에 앉아서 이본을 바라보고 있다. 돈은 어딨어?물으며 이본이 도끼를 치켜든다. 개가 짖는다. 도끼가 호를 그리며 스탠드를 후려갈긴다. 쓰러진 조명에 빛을 받은 벽엔 피가 튄다. 그 조명마저 꺼진다.
118. 어디 호수(밤): 고요한 수면 위로 도끼가 날아와 첨벙 물속에 빠진다. 멍하니 서 있는 이본.
119. 주점: 이본이 문을 열고 들어간다. 뒤이어 들어오는 사람중에 경찰도 있다. 이본은 술 한잔을 시켜 쭉 들이키고는 주점 안에 있던 경찰에게 죄를 자백한다. 웨이터가 테이블을 닦고 있는데 문간 쪽이 소란스럽다. 웨이터가 따라나가고 손님들도 모두 문간에 모인다.
120. 주점앞: 주점 바깥에도 군중이 가득 모였다. 문을 열고 경찰이 나와 군중들을 조금 밀어세우면 곧 다른 경찰들과 수갑을 찬 이본이 나온다. 어둠 속에 묻혀 얼굴이 보이지 않는 군중들은 조용히 그를 바라본다.    





 

사춘기 소녀와 어린 남동생은 호주의 광활한 아웃백에서 길을 잃고 굶주림과 갈증, 추위를 피해 방랑한다. 막장 아버지 탓인데 셋이서 소풍처럼 떠난 여행에서 아버지는 자식들을 향해 피스톨을 갈기더니 차를 불태우고 자신의 턱 밑에다 총구를 겨눠 자살한다. 황량한 황무지를 떠돌던 남매는 가까스로 발견한 오아시스에서 평온을 찾는 듯 했으나 하룻밤만에 말라버린 오아시스에 망연자실 널부러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남매의 눈앞에 도마뱀을 사냥하는 에버리진(aborigine-호주원주민) 소년이 나타난다. 통과의례의 하나로 아웃백을 방랑하며 생존의 기술을 터득하고 연마하는 소년에게 의지하여 두 남매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고 이후 셋은 방랑의 동료가 된다.

굉장히 매혹적이고 대담한 몽타주씬들이 많은데 원주민 소년과 남매가 나무 타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장면과 원주민 부족민들이 불탄 차량과 남매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한 장면을 교차편집한 씬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정서 중의 하나가 사춘기 소년 소녀가 다른 문명에서 온 서로의 낯선 육체를 미묘하게 응시하며 발생하는 성적 긴장감인데 이것이 이 몽타주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난다.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치마가 들쳐내려가는 소녀와 야생에서 단련된 탄탄한 소년의 검은 몸이 두꺼운 나뭇가지 위에서 흔들거리고 불탄 차량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놀이터처럼 이용하는 에버리진들의 알몸이 조응하여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후에 원주민 소년은 백인들이 짚차와 총을 이용해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사냥이 아니라 단순한 살육이었다. 이에 그는 몸에 하얀 칠을 하고 양손에 꽃을 들고 밤새 춤을 춘다. 글쎄, 로저 에버트는 <위대한 영화>에서 이 춤을 소녀를 위한 구애의 춤이라고 해석하고 있고 나 역시 이 해석에 전반적으로 수긍하긴 하지만 영화를 보는 당시에는 이것이 백인 문명과의 유일한 소통창구인 소녀에게 살육에 대한 일종의 항의이거나 살육당한 동물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소녀는 이 춤에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동생과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다음날 원주민 소년은 "이상한 열매" 처럼 나무에 목을 매고 죽어있다. 

영화의 엔딩은 무사히 문명사회로 돌아온 남매의 몇 년 후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녀는 화장이 짙어졌고 담배를 피며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도마 위에 놓인 고기를 썰고 있는데 그 질감이 말랑말랑하고 피가 흥건하게 적셔져 있어 흡사 간처럼 보이는 고기를 서걱서걱 썰고 있다. 그때 남자가 퇴근해서 집안에 들어온다. 그녀를 뒤에서 안으며 회사 이야기를 한다. 이번에 승진하게 됐다며 나이많은 누구누구씨를 밟고 올라가는 것이다. 그가 직업을 잃겠지만 그 사람 잘못도 있으니....이렇게 이어지는 말에 나이든 소녀는 시선이 멀어지며 오래 전 아웃백을 헤매던 당시의 한 순간을 떠올린다. 커다란 못에서 알몸으로 셋이 헤엄치던 아주 즐거웠던 순간을 말이다.



인상적인 점을 덧붙이자면 문명세계와 아웃백의 공간 전환시의 컷들이 굉장히 재미있게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처음 아버지와 남매가 소풍을 떠날 때 나오는 황량한 황무지의 컷은 빨간 벽돌 벽에서 트랙킹하여 황무지로 전환된다. 마치 세트처럼 벽돌벽 옆 황무지!인 것이다. 또 후에 남매가 문명세계로 넘어갈때는 광활한 산맥-> 황무지-> 숲 너머로 빼꼼 솟아있는 크레인-> 크레인 원경-> 철창 너머의 인공적인 나무들-> 도시풍경 순으로 공간의 변화가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컷들이 순차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나이든 소녀가 헤엄치는 순간을 회상할 때는 회색 벽돌벽, 빨간 벽돌벽, 못 주위의 암벽, 또 암벽 순으로 문명의 것과 자연의 것이 대구를 이루며 컷을 구성하고 있다.    

둘째는 마지막에 나이든 소녀와 이야기하는 남자의 정체다. 처음에는 이 소녀가 성장해서 결혼한 남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두번째로 훑어보면서 이 남자가 동생이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하게 됐다. 이렇게 생각하면 영화가 훨씬 더 다면적으로 다가오는데 여자가 회상하는 장면에 원주민 소년까지 셋이서 헤엄치는 장면과 대응해서 완벽한 후일담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황무지에서 방황하던 당시에 소년은 누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원주민 소년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문명세계의 습속을 지키려 하고 원주민 소년에게 미약하나마 호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그와 소통하려는 모습은 단 한번도 비치지 않았던 누나에 비해 어린 소년은 처음부터 바디랭귀지로 그와 대화했고 나중에는 조금씩 에버리진의 단어도 사용했었다. 그랬던 동생이 소녀가 과거를 회상하는 동안 현대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사를 하는 것은 훨씬 더 효과적으로 영화의 주제를 전달할 수 있는 설정이지 않을까. 

 
사실 특정 동물에 대한 포획을 금지하는 운동에는 늘 이런 반문이 따라 붙는다. "왜 꼭 그 동물만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돌고래를 잡는 일본이 "너희들은 소를 먹고, 우리는 고래 고기를 먹는다." 라고 말할 때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하는가. 고래나 돌고래는 소보다 더 똑똑하니까? 오히려  




"그래도 마지막엔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한테 그동안 마음에 담아놓은 말들, 꼭 한 번 마음껏 하고 싶었는데"



"이루어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늘 지금 이 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다 와가나요?"
"...어."
"아쉽네요."



"잠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어?"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박제된 종결. 세경이 여기서 살아남아 타히티에 갔다면 행복한 순간들을 많이 만났을까. 열심히 올라봤자 내 밑에 누군가 또 있을게 뻔한 신분의 사다리. 또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자신의 비루한 처지를 더욱 실감나게 하는 아픈 사랑. 이 시퍼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동안 묵묵히 고단한 삶을 살아온 세경에게 연출자가 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선물이 바로 이 엔딩이다.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차 안에서 하는 세경의 말이 아니라 그 말을 듣는 지훈의 붉게 충혈된 눈에서 감정이 고조되고, 이 둘을 추억하는 3년 뒤의 준혁과 정음에게서 슬픔을 공감하게 되듯이 이별은 오롯이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모든 이별은 결국 노스텔지어.